엄원식 읍장의 ‘문경문화유산관광 100선 시리즈’
출처 | 문경뉴스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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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http://www.mgnews.co.kr/front/news/view....ageIndex=1 |
문경의 정신적 유산, 소양서원
깊은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문경 가은읍 소양마을에, 우리 고장의 정신적 유산인 소양서원(瀟陽書院)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2006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 서원은 단순한 옛 건축물을 넘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올곧은 기개와 학문 정신이 오롯이 깃든 공간이다.
소양서원의 역사는 숙종 38년(1712)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 유림들은 고향출신 선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원 건립의 초석을 다졌는데, 그 출발점은 소양향현사(瀟陽鄕賢祠)라는 작은 사당이었다.
이곳에는 인백당 김낙춘 선생을 비롯해 사직 안귀손과 그의 사위 신숙빈 선생이 함께 배향됐다. 그러나 1707년(숙종 33), 안귀손과 신숙빈 두 분은 현재 농암의 한천사(寒泉祠)로 옮겨가고, 소양향현사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
1713년(숙종 39), 소양향현사는 소양서원으로 재정비되었고, 기존 김낙춘 선생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모시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이 서원에도 시련이 닥쳤으니,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만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도 학문을 가르치던 강당과 동재는 온전히 보존되었고, 그곳에서 선현들의 정신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긴 세월이 흐른 뒤 1990년에 이르러 사당이 복원되면서 소양서원은 마침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소양서원에는 다섯 분의 뛰어난 선현들이 모셔져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과 올곧은 정신을 공유하며 문경 가은 지역의 학맥을 이었다.
우선, 우의정까지 올랐던 문무 겸비의 인물 나암 정언신(鄭彦信, 1527~1591) 선생이 있다. 그는 뛰어난 군략으로 여진족의 난을 진압했으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돼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굳은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후대에 귀감이 됐다.
인백당 김낙춘(金樂春, 1525~1586) 선생은 퇴계 이황의 문하생으로, 을사사화의 참혹함을 목격하고 벼슬길을 포기했다. '백번 참는다'는 뜻의 호처럼 굳건한 은둔 군자의 삶을 살았으며, 소양동에 직접 지은 영류정(暎流亭)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산 남영(南嶸, 1548~1616) 선생은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니의 병을 간병하며 익힌 의술로 선조의 병을 고쳐 당상관에 올랐다. 서애 류성룡의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의술로 국난 극복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은 심대부(沈大孚, 1586~1657) 선생은 봉림대군(훗날 효종)의 스승이었으나, 인조의 묘호를 둘러싼 논쟁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다 유배를 가는 시련을 겪었다.
난세를 피해 문경에 정착한 후, 칠순이 넘은 나이에 부모를 위한 지극한 효행인 여묘(廬墓)를 행하다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가은이심(李襑, 1598~1648) 선생은 광해군의 혼란한 시대를 피해 문경 청화산 아래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전념했다.
그의 호 가은(稼隱)은 '농사지으며 은거한다'는 뜻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의 정신을 보여준다.
소양서원의 건축적 특징 또한 주목할 만하다. 뒷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한 서원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분리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특히 천장의 독특한 구성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서원 옆에는 유생들이 학문 수련에 정진하며 선현들의 덕을 기리던 존승재(尊勝齋)가 함께 자리해 소양서원이 단순한 제향 공간을 넘어 지역 교육의 요람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소양 서원은 역사적, 건축적, 인물사적 가치를 두루 갖춘 문경의 자랑이다. 이곳에 깃든 선현들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며, 소중한 문화유산을 함께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기를 바란다. 소양 서원은 과거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영원한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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