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복 80주년,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현실로 만든 K‑컬쳐
출처 | 충청타임즈 |
---|---|
원문 링크 |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859985 |
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역사의 고통과 분단, 산업화의 역경을 딛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그 상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대히트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가치는 단순한 흥행작 그 이상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염원이, 광복 80주년을 맞은 이 시점 글로벌 대중문화 콘텐츠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매혹하는 나라, 바로 김구 선생과 우리가 꿈꿔온 대한민국의 새로운 위상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한국 사람이 만든 한국 문화를 세계인이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타문화권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고, 그들에 의해 재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수출을 넘어서 ‘문화가 문화로 전이되는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과 같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한국 콘텐츠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K-컬처’라는 단어를 글로벌 브랜드로 끌어올렸고,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문화가 해외 창작자에 의해 ‘재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단순히 한국에서 만든 것을 외국인이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타 문화권에서 우리의 문화를 자기화하며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장면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본 문화가 열광적으로 수용된 ‘자포니즘(Japonisme)’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자포니즘은 일본의 목판화, 도자기, 의복, 정원양식 같은 문화 요소들이 유럽에 소개되며, 모네, 드가, 고흐 같은 거장들의 작품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문화적 현상이었다. 이렇게 19세기 일본의 문화가 세계를 유혹했다면, 16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가 전 세계의 감각을 이끄는 주체가 되었다. 일제에게 나라를 잃었던 우리 민족의 문화가 불과 80년 만에 ‘세계의 언어가 된 한국 문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K‑컬처는 전 세계 팬들에게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힙한 문화를 넘어, 현지 창작자들의 손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재구성하는 문화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을 단지 소비하고 환호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K-컬처가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문화 생태계로 지속되려면, ‘흥행’을 넘어 ‘지속’을 고민해야 한다. 문화유산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필자에게 이는 곧,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의 언어로 어떻게 재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주었듯, 문화는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언어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세계가 우리의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즐기며, 현지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설계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김구 선생이 꿈꿨던 ‘높은 문화의 힘’을 현실로 만드는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사)국가유산활용학회 님의 최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