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헤리티지 김남희 대표가 문경시 국가유산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국제교류에 헌신하고, 전통 도예문화의 연구·보존 및 가치 전승에 기여한 공로로 ‘2025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김남희 대표는 국가무형유산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의 딸로, 문경에서 성장해 한양대학교 생활과학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과정 중 조부 김운희 사기장이 조선시대 사옹원 분원에서 활동했던 기록 ‘하재일기’를 발굴해 학계에 소개하며 가문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나아가, 매년 전수관 활성화 사업, 지역 국가유산 교육사업, 생생국가유산 사업 등을 기획해 문경시 국가유산 관광 활성화를 이끌었으며, 국가유산청 우수사업으로 선정돼 2019년부터 4년 연속 국가유산청장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문경새재에서 사기장의 길을 걷다’라는 2025 생생국가유산 사업을 통해 전통 도자기 제작을 ICT와 접목한 실감형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사기장 실감공방, 세계와 소통하다’ 프로젝트는 미디어아트, 프로젝션 맵핑, AR 기술을 활용해 영남요 9대의 역사와 조선백자 제작 기법을 디지털로 구현, 관람객들에게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김남희 대표는 “그간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문경시 국가유산의 국제적 확산과 문화관광 발전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남희 대표는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23년 국립무형유산원의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공연 ‘생각하는 손(Thinking Hands)’의 사기장 코디네이터로 참여했으며, 같은 해 프랑스 파리 세르누치 박물관에서 ‘Master Baeksan’ 특별전을 개최해 유럽 관객에게 한국 도자문화의 깊이를 선보였다.
문경의 정신적 유산, 소양서원
깊은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문경 가은읍 소양마을에, 우리 고장의 정신적 유산인 소양서원(瀟陽書院)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2006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이 서원은 단순한 옛 건축물을 넘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올곧은 기개와 학문 정신이 오롯이 깃든 공간이다.
소양서원의 역사는 숙종 38년(1712)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역 유림들은 고향출신 선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원 건립의 초석을 다졌는데, 그 출발점은 소양향현사(瀟陽鄕賢祠)라는 작은 사당이었다.
이곳에는 인백당 김낙춘 선생을 비롯해 사직 안귀손과 그의 사위 신숙빈 선생이 함께 배향됐다. 그러나 1707년(숙종 33), 안귀손과 신숙빈 두 분은 현재 농암의 한천사(寒泉祠)로 옮겨가고, 소양향현사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
1713년(숙종 39), 소양향현사는 소양서원으로 재정비되었고, 기존 김낙춘 선생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모시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이 서원에도 시련이 닥쳤으니,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만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도 학문을 가르치던 강당과 동재는 온전히 보존되었고, 그곳에서 선현들의 정신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긴 세월이 흐른 뒤 1990년에 이르러 사당이 복원되면서 소양서원은 마침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소양서원에는 다섯 분의 뛰어난 선현들이 모셔져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과 올곧은 정신을 공유하며 문경 가은 지역의 학맥을 이었다.
우선, 우의정까지 올랐던 문무 겸비의 인물 나암 정언신(鄭彦信, 1527~1591) 선생이 있다. 그는 뛰어난 군략으로 여진족의 난을 진압했으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돼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굳은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후대에 귀감이 됐다.
인백당 김낙춘(金樂春, 1525~1586) 선생은 퇴계 이황의 문하생으로, 을사사화의 참혹함을 목격하고 벼슬길을 포기했다. '백번 참는다'는 뜻의 호처럼 굳건한 은둔 군자의 삶을 살았으며, 소양동에 직접 지은 영류정(暎流亭)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산 남영(南嶸, 1548~1616) 선생은 지극한 효심으로 어머니의 병을 간병하며 익힌 의술로 선조의 병을 고쳐 당상관에 올랐다. 서애 류성룡의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의술로 국난 극복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은 심대부(沈大孚, 1586~1657) 선생은 봉림대군(훗날 효종)의 스승이었으나, 인조의 묘호를 둘러싼 논쟁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다 유배를 가는 시련을 겪었다.
난세를 피해 문경에 정착한 후, 칠순이 넘은 나이에 부모를 위한 지극한 효행인 여묘(廬墓)를 행하다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가은이심(李襑, 1598~1648) 선생은 광해군의 혼란한 시대를 피해 문경 청화산 아래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전념했다.
그의 호 가은(稼隱)은 '농사지으며 은거한다'는 뜻으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의 정신을 보여준다.
소양서원의 건축적 특징 또한 주목할 만하다. 뒷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한 서원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이 분리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특히 천장의 독특한 구성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서원 옆에는 유생들이 학문 수련에 정진하며 선현들의 덕을 기리던 존승재(尊勝齋)가 함께 자리해 소양서원이 단순한 제향 공간을 넘어 지역 교육의 요람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소양 서원은 역사적, 건축적, 인물사적 가치를 두루 갖춘 문경의 자랑이다. 이곳에 깃든 선현들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며, 소중한 문화유산을 함께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기를 바란다. 소양 서원은 과거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영원한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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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문화유산연구센터 김재홍 센터장이 정선동원탄좌 유산의 시대적 의미와 미래가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사진=김예진 기자 |
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은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역사의 고통과 분단, 산업화의 역경을 딛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그 상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대히트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가치는 단순한 흥행작 그 이상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염원이, 광복 80주년을 맞은 이 시점 글로벌 대중문화 콘텐츠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매혹하는 나라, 바로 김구 선생과 우리가 꿈꿔온 대한민국의 새로운 위상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은 한국 사람이 만든 한국 문화를 세계인이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타문화권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고, 그들에 의해 재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수출을 넘어서 ‘문화가 문화로 전이되는 진화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과 같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한국 콘텐츠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K-컬처’라는 단어를 글로벌 브랜드로 끌어올렸고,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문화가 해외 창작자에 의해 ‘재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의 지평을 확장시켰다. 단순히 한국에서 만든 것을 외국인이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타 문화권에서 우리의 문화를 자기화하며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장면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본 문화가 열광적으로 수용된 ‘자포니즘(Japonisme)’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자포니즘은 일본의 목판화, 도자기, 의복, 정원양식 같은 문화 요소들이 유럽에 소개되며, 모네, 드가, 고흐 같은 거장들의 작품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문화적 현상이었다. 이렇게 19세기 일본의 문화가 세계를 유혹했다면, 16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가 전 세계의 감각을 이끄는 주체가 되었다. 일제에게 나라를 잃었던 우리 민족의 문화가 불과 80년 만에 ‘세계의 언어가 된 한국 문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K‑컬처는 전 세계 팬들에게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힙한 문화를 넘어, 현지 창작자들의 손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재구성하는 문화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을 단지 소비하고 환호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K-컬처가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문화 생태계로 지속되려면, ‘흥행’을 넘어 ‘지속’을 고민해야 한다. 문화유산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필자에게 이는 곧,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의 언어로 어떻게 재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주었듯, 문화는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언어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세계가 우리의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즐기며, 현지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설계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김구 선생이 꿈꿨던 ‘높은 문화의 힘’을 현실로 만드는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